68년만에 법정서 털어놓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한 hobby

68년만에 법정서 털어놓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한


법정에 나온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이는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4일 오후 광주지법에 출석해 피해사실을 증언했다. 2013.10.4 <<지방기사 참조>> sangwon700@yna.co.kr

미쓰비시 상대 손배소 재판서 당사자 피해진술

"침묵하는 정부, 68년 한 풀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복'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허위진술의 제재를 받기로 맹세합니다."

4일 오후 광주지법 204호 법정.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힘겨운 소송을 벌이는 양금덕(82) 할머니의 선서를 들은 광주지법 민사12부 재판장 이종광 부장판사는 곧바로 오류를 바로잡았다.

"보복이 아니고 '보탬'입니다"

양 할머니가 "제가 한글을 잘 모릅니다"고 겸연쩍어하자 방청석에서는 작은 웃음소리가 새나왔다. 그러나 웃음은 여기까지였다.

광복 68년만에 처음 이뤄진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법정 피해 증언이 시작되자 방청석은 금세 눈물과 탄식으로 뒤덮였다.

양 할머니는 일본에 동원돼 끔찍한 노동력 착취를 겪고, 다시 돌아와 손가락질 받아야 했던 삶의 과정을 묻는 원고 측 김정희 변호사의 질문에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또박또박 답변을 이어갔다.

1944년 5월 마사키라는 이름의 교장은 곤도라는 이름의 일본 헌병을 교실로 데려와 "이 분 말을 잘 들으면 중·고교도 보내주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며 일본으로 건너가고 싶은 학생들의 손을 들게 했다.

자원하는 학생이 없자 당시 초등학교 6학년 급장이었던 양 할머니에게 "급장이 손을 들지 않으면 누가 가겠느냐"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공부를 계속해 교사가 되고 싶었던 양 할머니는 부모 동의 확인에 필요한 아버지의 도장을 훔쳐다가 담임에게 갖다줬다.

"일본에 가면 죽는다"며 반대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가족과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일본행 뱃길에 올라선 13살 소녀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생활'을 하게 됐다.

아침에 눈 뜨면 온종일 비행기 부품의 녹을 시너나 알코올로 닦고 완성된 비행기에 페인트칠하는 일과가 반복됐다.

작은 키에 팔을 올려 페인트칠하다 보니 눈에 페인트가 튀어 불편한 기색이라도 보이면 돌아오는 건 발길질이었다.

양 할머니는 수차례 수술을 했지만 눈과 코가 여전히 불편하다.

매실 장아찌 두 조각, 단무지 두 조각, 된장국이 전부인 식사에 일본인들이 먹고 버린 음식 찌꺼기 통을 뒤지다가 얻어맞거나 부족한 화장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옷에 소변을 누는 일도 있었다.

"68년 한 풀어주세요"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이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82) 할머니가 4일 오후 광주지법에 출석해 피해 증언을 하기 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재판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재판에 앞서 법정 촬영을 허가했다. 2013.10.4 <<지방기사 참조>> sangwon700@yna.co.kr

양 할머니는 밤마다 찾아오는 공습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밤이면 귀에서 '윙윙'하는 환청이 들려 불면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당시 발생한 지진에 무너진 공장건물 잔해에 묻혀 두 시간 동안 의식을 잃고 간신히 살아난 양 할머니는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듬해 해방이 되면서 양 할머니는 10월 20일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는 불편한 시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죽으라 일만 하고 돌아온 그에게는 '종군 위안부', '일본군의 성 노예'로 오해한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기다리고 있었다.

21살에 결혼한 남편은 10년 뒤 이 사실을 알고 집을 나갔고 밖에서 3자녀를 얻고 병들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다닐 때면 "어이, 할매 이리 와봐 저녁에 술 한잔 하게"라는 조롱도 들어야 했다.

1999년 3·1절에 맞춰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낸 소송이 모두 기각됐지만 그동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보내준 성원을 잊을 수 없었다고 양 할머니는 강조했다. 여전히 침묵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양 할머니는 "여자 몸으로 어린 나이에 일본에 가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한 번에 돈(임금)을 주겠다'는 말을 믿었는데 어느덧 68년이 지났다"며 "정부는 그동안 말 한마디 않고 있어 너무도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때 한일협정으로 정부가 우리 대신 돈을 받아서 도로도 놓고 공장도 지어서 나라가 발전했다"며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됐으니 우리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양 할머니는 이어 "아버지, 어머니 이름 석 자가 적힌 비석이라도 세워서 원풀이해 드리고 눈감는 게 소원"이라며 "재판장님, 여러분 협조해주길 부탁합니다"라고 증언을 마쳤다.

이날 재판에는 원고 측의 요청에 따라 양 할머니를 비롯해 이동련(83)·박해옥(83)·김성주(84) 할머니와 김중곤(89) 할아버지 등 원고 5명이 차례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원고들은 물론 소송을 지원하는 일본인들, 고교생들도 방청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흐느끼는 모습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원고들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각각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을 마치고 별도로 날짜를 지정해 선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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